지역방송진흥 부문

저널리스트(journalist)
저널트래쉬
(journaltrash)
 사이

이균형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

가당찮게 필자가 간혹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일선 학교 등에서 ‘언론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할 때마다 써먹는 문구가 있다.
“저널리스트(journalist)가 될 것인가, 저널트래쉬(journaltrash)가 될 것인가?” 그런데 ‘저널트래쉬’라는 말은 필자가 갖다 붙여 만든 ‘신조어’로 처음 들었을 텐데도 수강생들은 그 뜻을 잘도 알아맞힌다. 기자와 쓰레기가 버무려진 ‘기레기’라고. 그런데 언론인으로서는 죽기보다도 더 듣기 싫은 이 말이 언젠가부터 기사 댓글마다에 기자를 호칭하는 접두사가 돼 버렸다. 1992년 언론에 입문해 30년 넘는 세월을 언론인으로 지낸 필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말자, 특히 CBS가 여러 언론사 가운데 하나(one of them)가 아닌, 확실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outstanding) 언론사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객기를 달고 살았던 듯하다. 이런 치기 어린 포부를 담고 살다 보니 정년 몇 년을 앞두고서 제 50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가운데 ‘지역방송 진흥’ 분야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게 됐다.

개인상을 수상한 전북CBS 이균형 보도제작국장

필자는 1992년 지역 일간지인 전주일보사 기자를 시작으로 97년 전북 CBS PD로 입사한 뒤 2001년 다시 기자로 전직해 현재까지 CBS에서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먹고 있다. 특히 CBS기자로 활동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성역’으로 일컬어져 왔던 엘리트와 토착 세력, 지방 의원 등에 대한 비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함에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었다고 하면 너무 티 나는 자화자찬일까? ㅎㅎ. 아무튼 이런 취재와 보도를 통해 엄중한 사법 처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건강한 지역 사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한 개를 놓았다는 평가가 이번 수상의 중대 사유가 됐다. 

 

30년여 간의 지역 방송인으로서의 치열했던 삶은 전북 언론에서는 다수의 수상 실적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지난 2013년 10월에는 전북 기자협회 회장에 선출돼 2년가량 직무를 수행했으며 이 기간 동안 기자로 근무하다 정치인들의 선거캠프에 합류한 기자에 대해 재입사를 금지하는 ‘폴리널리스트 금지 규정’을 회칙에 반영해 현재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이는 기자로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당시 좁은 지역사회에서 가깝게 지내던 선, 후배들도 그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읍참마속’이라는 단어를 뇌리에 심어야 했다. 


지난 2020년 1월부터는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취재 현장을 벗어나 데스크 활동을 통해 얻게 된 시야를 토대로 졸필이나마 전북 발전과 사회 발전을 고민하는 ‘밸런스 칼럼 - 突直口’를 써 오고 있다. 


자, 그럼 후배님들께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혹시 모를 기대감 속에 그동안 어떤 기사들을 쏟아냈는지 하나씩 서술해 보면서 ‘자뻑’에 빠져볼까 한다.

기획리포트 ‘사고 팔리는 의학박사’
취재 보도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들의 석사와 박사 학위가 수천만 원에 매매된다는 실태를 3개월에 걸친 취재를 통해 기획리포트 3부작 형태로 보도했다. 방송 보도가 나가자 전주지방검찰청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3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엄청난 결과를 내놓았다. 상당수의 대학 교수들이 학위 거래에 관여됐고 검찰은 연관된 모든 교수를 사법처리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1억 원 이상 착복한 경우만을 사법처리하기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이에 따라 전북대와 원광대, 우석대 등 전북지역 대학 의학계 교수 9명이 구속됐고, 이들 교수진들과 거래를 통해 학위를 사들인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 등 200여 명이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와 관련해 각 의과대학 학장들은 사과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보건복지부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관리 감독을 지시하는 공문을 각 대학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5)


‘형님이 접수한 자치단체’
취재 보도

조직폭력배 두목이 운영하는 소규모 건설업체가 전북 김제시로부터 십여 년 동안 천억 여 원에 달하는 공사를 수주해 온 실태를 고발한 기사.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김제시청 간부는 물론, 전주지방검찰청 간부와 결탁해 공사를 독식해 왔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보도 이후 검찰이 수사에 나서 해당 조직폭력배 두목을 구속했으며 이와 연루된 김제시청 간부들도 모두 사법 처리됐다. 이로써 한때 김제시에 조폭과 검찰, 김제시 내부 커넥션을 뜻하는 ‘000 사단’ 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됐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7),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07),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방송기자상’(2007)


<특집 2부작> AI 기획리포트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무새의 경고’
프로그램 연출, 제작

매년 가금류 사육 농가들에 천문학적 피해를 입혔던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피해 실태와 함께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앵무새 밀수가 조류 상인들에게 성행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됐다. 아울러 조류 상인들이 태국의 짜투짝 시장이라는 곳을 앵무새 밀수의 주 통로로 이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태국으로 향했다. 조류 상인을 가장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짜뚜짝 시장 상인들 입에서는 한국인 단골 고객이 있으며 공항에서 적발되지 않도록 특수 장치를 통해 앵무새를 포장해 주겠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들을 수 있었다. 취재 도중 기자임이 발각돼 상인들에게 한 시간 가량 억류되면서 캠코더와 명함 등을 뺏긴 뒤 풀려나기도 했으나 다행히 허리춤에 둘렀던 여행용 가방 안에 숨겨뒀던 녹음기가 제 성능을 함으로써 앵무새 밀거래 실태가 고스란히 라디오 매체인 CBS 방송을 통해 송출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칼이 곤두서곤 한다. 이 같은 취재 내용을 토대로 <특집 2부작> AI 기획리포트 -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무새의 경고’ 프로그램을 1시간 분량의 종합구성물로 연출, 제작했다.

  관련 수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2008.8)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9),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2009),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08. 10)


‘현직 군수와 후보들, 브로커에 
줄줄이 노예각서’ 취재 보도

군수 4명이 잇따라 비리 의혹으로 사법 처리 되거나 낙마하면서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전북 임실군에 대한 집중 취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임실군을 쥐락펴락하는 ‘임실 5적’ 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특히 이 가운데 핵심 인물이 군수 후보들에게 접근해 자신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인사권과 공사권의 40%를 넘겨준다는 각서를 받아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이 핵심 인물은 당시 군수 후보 다수에게 각서를 받아냄으로써 누가 군수가 돼도 각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군수 후보들은 자신이 각서를 써주지 않을 경우 군수가 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모두 각서를 써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자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핵심 인물을 구속했으며 결국 당시 각서를 써 주었던 군수까지 사법처리됨으로써 임실에서는 군수 5명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임실에서는 “5적을 척결하고 임실을 바로 잡자”는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시민 단체들이 자정 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다.     


후일담이지만 당시 구속된 핵심 인물이 본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1억 원의 민사 소송을 걸기도 했으나 계속된 후속 보도에 결국 소를 취하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2),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20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12.1), 대한언론인회 ‘대한언론인상’(2012)


‘농약 범벅 친환경 인삼,
한방 화장품으로’ 취재 보도

우리나라 인삼의 고장 ‘진안’에서 친환경 인삼을 이용한 한방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농약을 이용해 재배한 인삼이 쓰이고 있다는 한 인삼 농가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착수했다. 친환경 인삼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절대 농약을 이용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친환경인증 업체가 불법의 주체였다. 당연히 인삼 재배 농가와 짬짜미가 이뤄졌고 이런 농약으로 재배한 인삼이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국내 대기업 화장품 제조회사에 납품됐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인증 업체 선정 과정에서 허술한 법적 규정, 농약을 사용한 뒤 1년가량이 지나면 농약 성분이 인삼 성분 검사에서 사라진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이 내용을 다룬 보도가 나가자 검찰은 해당 농가와 친환경인증 업체, 그리고 진안 인삼농협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한데 이어 3개월에 걸친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했다. 당시 인삼의 대명사인 진안군에 미칠 엄청난 타격이 우려되면서 보도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으나,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오히려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 맞다는 판단 아래 기사화를 강행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4),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방송기자상’ (2014)


‘유령사업에 하극상까지, 
바닥 친 자치단체’ 취재 보도

전북 장수군에서 비서실장이 군정을 농락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취재에 나섰으며 해당 비서실장이 건설업체와 유착해 공사를 수주해 주고 뒷돈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다수의 건설업자들로부터 확인했다. 심지어 한 공사장에서는 장수군에서조차 누가 공사를 하는지 모르는 관 발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에 확인을 하니 “우리가 하는 공사가 아니다”고 발뺌을 했고, 장수군청 관계자는 “그런 얘기가 있어서 확인을 해 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는 해괴한 답변이 들려왔다. 결국 해당 공사는 주체가 없는 유령이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확인 결과 비서실장이 특정 업체에 공사를 맡겨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장수군청 행정상에는 아직 서류 절차조차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비서실장은 인사권의 최종 책임자인 부군수 라인조차 제치고 본인이 인사서류에 특정인을 승진시킬 것을 표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는 증언을 부군수와 다수의 장수군청 공무원들로부터 확보했다. 이를 통해 연속 보도가 나갔으며 결국 비서실장은 영어의 몸이 되면서 장수군정이 비로소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5)


재량사업비 뒷돈 거래부터
전국 최초 폐지선언까지‘
취재 보도

전라북도를 포함한 전국의 모든 도의원과 시의원 등 지방 의원들에게는 소속 행정기관으로부터 ‘재량사업비’, 또는 ‘주민 숙원 사업비’라는 명칭으로 1인당 수억 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그런데 이 ‘재량사업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도의원과 시의원 등 지방의원들이 업자들과 유착을 통해 사업비의 10~20%를 챙기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려왔음에도 누구하나 실체를 파고들지 않았다.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다들 묵인해 왔던 것이다. 즉시 취재에 착수했고 정의로운 전, 현직 지방의원들로부터 그 실태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한 전직 군의원은 “재량사업비로 지역민원을 해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사업을 진행했던 후배 사업자가 찾아와 사업비용의 10%를 소수점 이하까지 맞춰가지고 찾아왔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전 도의원은 “5억 원의 재량사업비를 진행하는 의원들은 무조건 연말에 연봉 5천만 원이 늘어난다는 말을 동료 의원에게 들었다“고 말했고, 한 현직 도의원은 “제발 저런 짓거리 하지 말자고 동료 의원들에게 수없이 말했지만 결국 터질게 터졌다”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업체와 전, 현직 지방 의원, 행정 기관 등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간 결과, 재량사업비를 둘러 싼 리베이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상당수 지방 의원들은 소속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에 재량사업비를 쓰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업자는 똑같고 심지어 ‘재량사업비’만을 노리고 있는 전문 브로커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실태 보도가 나가자 검찰이 즉시 움직였고 맨 먼저 전북도의회 부의장이 구속됐다. 이어 도의원들이 줄줄이 압수 수색을 당했고 1년 여 가까운 수사 끝에 도의원과 시의원, 업자와 브로커 등이 법정에 서게 됐으며 전라북도의회를 비롯한 일선 시, 군 의회는 물론 타 지역 자치단체 의회에서도 ‘재량사업비’ 폐지를 잇따라 선언함으로써 제도적인 개선책으로 이어졌다.

  관련 수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17.10),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기자상’(2017)

에필로그


지난 2020년 1월부터는 기자에서 보도제작국장으로 임명돼 직책을 수행해 오고 있으며 취재 현장을 누비는 대신, 낙후된 전북 지역에 대한 진정한 발전을 고민하게 됐다. 국장의 직책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 칼럼을 쓰게 됐으며 CBS 노컷뉴스에 한, 두 달에 한 번씩 쓰던 칼럼이 호응을 얻으면서 ‘밸런스 칼럼 - 突直口’ 라는 타이틀을 문패로 걸고 최근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칼럼을 쓰고 있다. 칼럼을 보는 이들마다 “속이 후련하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명쾌한 글” 등이라는 반향과 함께 올해 4월부터는 전북 CBS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전라북도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 3분 칼럼’ 이라는 타이틀로 전파를 타고 있다. 칼럼을 통해 전북의 낙후 실태와 발전 방안, 중앙에서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지방에 대한 그릇된 시선 등을 꼬집었으며 앞으로도 지역 언론인으로서 이런 역할을 수행해 나감에 주저함이 없을 것임을 밝혀둔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다. 필자는 인생 마라톤에서 반환점 이상을 전북 CBS에서 달려왔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달릴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누렸던 기사를 쓸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른 사회적 반향, 수상의 영광 등은 CBS라는 철저하게 ‘필자 맞춤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민주 언론의 상징으로 CBS를 우뚝 세워주셨던 선배님들의 위대한 유산이 ‘노컷뉴스’를 통해 르네상스로 찬란하게 피어났고 이제 MZ 세대들이 그 바통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다. (사실 필자도 MZ 세대이다. 초등학교 시절, 주말 5시쯤이면 어김없이 TV가 있는 집에 몰려가 ‘마징가 제트’를 본방 사수했으니...) 


이순신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감히 이순신 장군의 뼈때리는 말을 필자 나름의 각오로 되새기며 너절한 글을 마친다. ‘若無全北 是無CBS...’ 내 인생의 동반자~ CBS 파이팅 !

참고로 유튜브 동영상은 지난 2008년 필자가 경찰 출입기자로 일하던 시절, 당시 대학 4학년생이던 지금의 전남 소민정 보도제작국장이 대학 리포트용으로 만들었던 자료. 이 당시에는 조금 더 풋풋했던 기억이... ㅎㅎ

지역방송진흥 부문

저널리스트(journalist)
저널트래쉬(journaltrash)
 사이

이균형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

가당찮게 필자가 간혹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일선 학교 등에서 ‘언론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특강을 할 때마다 써먹는 문구가 있다. “저널리스트(journalist)가 될 것인가, 저널트래쉬(journaltrash)가 될 것인가?” 그런데 ‘저널트래쉬’라는 말은 필자가 갖다 붙여 만든 ‘신조어’로 처음 들었을 텐데도 수강생들은 그 뜻을 잘도 알아맞힌다. 기자와 쓰레기가 버무려진 ‘기레기’라고. 그런데 언론인으로서는 죽기보다도 더 듣기 싫은 이 말이 언젠가부터 기사 댓글마다에 기자를 호칭하는 접두사가 돼 버렸다. 1992년 언론에 입문해 30년 넘는 세월을 언론인으로 지낸 필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말자, 특히 CBS가 여러 언론사 가운데 하나(one of them)가 아닌, 확실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outstanding) 언론사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객기를 달고 살았던 듯하다. 이런 치기 어린 포부를 담고 살다 보니 정년 몇 년을 앞두고서 제 50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가운데 ‘지역방송 진흥’ 분야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게 됐다.

개인상을 수상한 전북CBS 이균형 보도제작국장

필자는 1992년 지역 일간지인 전주일보사 기자를 시작으로 97년 전북 CBS PD로 입사한 뒤 2001년 다시 기자로 전직해 현재까지 CBS에서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먹고 있다. 특히 CBS기자로 활동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성역’으로 일컬어져 왔던 엘리트와 토착 세력, 지방 의원 등에 대한 비리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함에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었다고 하면 너무 티 나는 자화자찬일까? ㅎㅎ. 아무튼 이런 취재와 보도를 통해 엄중한 사법 처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건강한 지역 사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한 개를 놓았다는 평가가 이번 수상의 중대 사유가 됐다. 

 

30년여 간의 지역 방송인으로서의 치열했던 삶은 전북 언론에서는 다수의 수상 실적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지난 2013년 10월에는 전북 기자협회 회장에 선출돼 2년가량 직무를 수행했으며 이 기간 동안 기자로 근무하다 정치인들의 선거캠프에 합류한 기자에 대해 재입사를 금지하는 ‘폴리널리스트 금지 규정’을 회칙에 반영해 현재까지 시행해 오고 있다. 이는 기자로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당시 좁은 지역사회에서 가깝게 지내던 선, 후배들도 그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읍참마속’이라는 단어를 뇌리에 심어야 했다. 


지난 2020년 1월부터는 전북 CBS 보도제작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취재 현장을 벗어나 데스크 활동을 통해 얻게 된 시야를 토대로 졸필이나마 전북 발전과 사회 발전을 고민하는 ‘밸런스 칼럼 - 突直口’를 써 오고 있다. 


자, 그럼 후배님들께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혹시 모를 기대감 속에 그동안 어떤 기사들을 쏟아냈는지 하나씩 서술해 보면서 ‘자뻑’에 빠져볼까 한다.

기획리포트 ‘사고 팔리는 의학박사’ 취재 보도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들의 석사와 박사 학위가 수천만 원에 매매된다는 실태를 3개월에 걸친 취재를 통해 기획리포트 3부작 형태로 보도했다. 방송 보도가 나가자 전주지방검찰청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해 3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엄청난 결과를 내놓았다. 상당수의 대학 교수들이 학위 거래에 관여됐고 검찰은 연관된 모든 교수를 사법처리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1억 원 이상 착복한 경우만을 사법처리하기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이에 따라 전북대와 원광대, 우석대 등 전북지역 대학 의학계 교수 9명이 구속됐고, 이들 교수진들과 거래를 통해 학위를 사들인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 등 200여 명이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와 관련해 각 의과대학 학장들은 사과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보건복지부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관리 감독을 지시하는 공문을 각 대학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관련 수상 :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5)


‘형님이 접수한 자치단체’ 취재 보도

조직폭력배 두목이 운영하는 소규모 건설업체가 전북 김제시로부터 십여 년 동안 천억 여 원에 달하는 공사를 수주해 온 실태를 고발한 기사.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김제시청 간부는 물론, 전주지방검찰청 간부와 결탁해 공사를 독식해 왔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보도 이후 검찰이 수사에 나서 해당 조직폭력배 두목을 구속했으며 이와 연루된 김제시청 간부들도 모두 사법 처리됐다. 이로써 한때 김제시에 조폭과 검찰, 김제시 내부 커넥션을 뜻하는 ‘000 사단’ 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됐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7),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07),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방송기자상’(2007)


<특집 2부작> AI 기획리포트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무새의 경고’ 프로그램 연출, 제작

매년 가금류 사육 농가들에 천문학적 피해를 입혔던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피해 실태와 함께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앵무새 밀수가 조류 상인들에게 성행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됐다. 아울러 조류 상인들이 태국의 짜투짝 시장이라는 곳을 앵무새 밀수의 주 통로로 이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태국으로 향했다. 조류 상인을 가장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짜뚜짝 시장 상인들 입에서는 한국인 단골 고객이 있으며 공항에서 적발되지 않도록 특수 장치를 통해 앵무새를 포장해 주겠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들을 수 있었다. 취재 도중 기자임이 발각돼 상인들에게 한 시간 가량 억류되면서 캠코더와 명함 등을 뺏긴 뒤 풀려나기도 했으나 다행히 허리춤에 둘렀던 여행용 가방 안에 숨겨뒀던 녹음기가 제 성능을 함으로써 앵무새 밀거래 실태가 고스란히 라디오 매체인 CBS 방송을 통해 송출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칼이 곤두서곤 한다. 이 같은 취재 내용을 토대로 <특집 2부작> AI 기획리포트 - ‘잔인했던 봄, 그리고 앵무새의 경고’ 프로그램을 1시간 분량의 종합구성물로 연출, 제작했다.

  관련 수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2008.8)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09),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2009),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08. 10)


‘현직 군수와 후보들, 브로커에 줄줄이 노예각서’ 취재 보도

군수 4명이 잇따라 비리 의혹으로 사법 처리 되거나 낙마하면서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전북 임실군에 대한 집중 취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임실군을 쥐락펴락하는 ‘임실 5적’ 이라 불리는 토착세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특히 이 가운데 핵심 인물이 군수 후보들에게 접근해 자신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인사권과 공사권의 40%를 넘겨준다는 각서를 받아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이 핵심 인물은 당시 군수 후보 다수에게 각서를 받아냄으로써 누가 군수가 돼도 각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군수 후보들은 자신이 각서를 써주지 않을 경우 군수가 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모두 각서를 써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자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핵심 인물을 구속했으며 결국 당시 각서를 써 주었던 군수까지 사법처리됨으로써 임실에서는 군수 5명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임실에서는 “5적을 척결하고 임실을 바로 잡자”는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시민 단체들이 자정 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다.     

후일담이지만 당시 구속된 핵심 인물이 본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1억 원의 민사 소송을 걸기도 했으나 계속된 후속 보도에 결국 소를 취하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2),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2012),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12.1), 대한언론인회 ‘대한언론인상’(2012)


‘농약 범벅 친환경 인삼, 한방 화장품으로’ 취재 보도

우리나라 인삼의 고장 ‘진안’에서 친환경 인삼을 이용한 한방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농약을 이용해 재배한 인삼이 쓰이고 있다는 한 인삼 농가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착수했다. 친환경 인삼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절대 농약을 이용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친환경인증 업체가 불법의 주체였다. 당연히 인삼 재배 농가와 짬짜미가 이뤄졌고 이런 농약으로 재배한 인삼이 아모레퍼시픽이라는 국내 대기업 화장품 제조회사에 납품됐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인증 업체 선정 과정에서 허술한 법적 규정, 농약을 사용한 뒤 1년가량이 지나면 농약 성분이 인삼 성분 검사에서 사라진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이 내용을 다룬 보도가 나가자 검찰은 해당 농가와 친환경인증 업체, 그리고 진안 인삼농협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한데 이어 3개월에 걸친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했다. 당시 인삼의 대명사인 진안군에 미칠 엄청난 타격이 우려되면서 보도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으나,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오히려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 맞다는 판단 아래 기사화를 강행했다.

  관련 수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4),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방송기자상’ (2014)


‘유령사업에 하극상까지, 바닥 친 자치단체’ 취재 보도

전북 장수군에서 비서실장이 군정을 농락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취재에 나섰으며 해당 비서실장이 건설업체와 유착해 공사를 수주해 주고 뒷돈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다수의 건설업자들로부터 확인했다. 심지어 한 공사장에서는 장수군에서조차 누가 공사를 하는지 모르는 관 발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에 확인을 하니 “우리가 하는 공사가 아니다”고 발뺌을 했고, 장수군청 관계자는 “그런 얘기가 있어서 확인을 해 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는 해괴한 답변이 들려왔다. 결국 해당 공사는 주체가 없는 유령이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확인 결과 비서실장이 특정 업체에 공사를 맡겨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장수군청 행정상에는 아직 서류 절차조차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비서실장은 인사권의 최종 책임자인 부군수 라인조차 제치고 본인이 인사서류에 특정인을 승진시킬 것을 표시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는 증언을 부군수와 다수의 장수군청 공무원들로부터 확보했다. 이를 통해 연속 보도가 나갔으며 결국 비서실장은 영어의 몸이 되면서 장수군정이 비로소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관련 수상 : 한국방송대상 작품상(2015)


‘재량사업비 뒷돈 거래부터 전국 최초 폐지선언까지‘ 취재 보도

전라북도를 포함한 전국의 모든 도의원과 시의원 등 지방 의원들에게는 소속 행정기관으로부터 ‘재량사업비’, 또는 ‘주민 숙원 사업비’라는 명칭으로 1인당 수억 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그런데 이 ‘재량사업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도의원과 시의원 등 지방의원들이 업자들과 유착을 통해 사업비의 10~20%를 챙기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려왔음에도 누구하나 실체를 파고들지 않았다. 관행이라는 이름아래 다들 묵인해 왔던 것이다. 즉시 취재에 착수했고 정의로운 전, 현직 지방의원들로부터 그 실태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한 전직 군의원은 “재량사업비로 지역민원을 해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사업을 진행했던 후배 사업자가 찾아와 사업비용의 10%를 소수점 이하까지 맞춰가지고 찾아왔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전 도의원은 “5억 원의 재량사업비를 진행하는 의원들은 무조건 연말에 연봉 5천만 원이 늘어난다는 말을 동료 의원에게 들었다“고 말했고, 한 현직 도의원은 “제발 저런 짓거리 하지 말자고 동료 의원들에게 수없이 말했지만 결국 터질게 터졌다”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업체와 전, 현직 지방 의원, 행정 기관 등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간 결과, 재량사업비를 둘러 싼 리베이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특히 상당수 지방 의원들은 소속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에 재량사업비를 쓰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업자는 똑같고 심지어 ‘재량사업비’만을 노리고 있는 전문 브로커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실태 보도가 나가자 검찰이 즉시 움직였고 맨 먼저 전북도의회 부의장이 구속됐다. 이어 도의원들이 줄줄이 압수 수색을 당했고 1년 여 가까운 수사 끝에 도의원과 시의원, 업자와 브로커 등이 법정에 서게 됐으며 전라북도의회를 비롯한 일선 시, 군 의회는 물론 타 지역 자치단체 의회에서도 ‘재량사업비’ 폐지를 잇따라 선언함으로써 제도적인 개선책으로 이어졌다.

  관련 수상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17.10),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올해의 기자상’(2017)

에필로그

지난 2020년 1월부터는 기자에서 보도제작국장으로 임명돼 직책을 수행해 오고 있으며 취재 현장을 누비는 대신, 낙후된 전북 지역에 대한 진정한 발전을 고민하게 됐다. 국장의 직책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 칼럼을 쓰게 됐으며 CBS 노컷뉴스에 한, 두 달에 한 번씩 쓰던 칼럼이 호응을 얻으면서 ‘밸런스 칼럼 - 突直口’ 라는 타이틀을 문패로 걸고 최근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칼럼을 쓰고 있다. 칼럼을 보는 이들마다 “속이 후련하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명쾌한 글” 등이라는 반향과 함께 올해 4월부터는 전북 CBS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전라북도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 – 3분 칼럼’ 이라는 타이틀로 전파를 타고 있다. 칼럼을 통해 전북의 낙후 실태와 발전 방안, 중앙에서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는 지방에 대한 그릇된 시선 등을 꼬집었으며 앞으로도 지역 언론인으로서 이런 역할을 수행해 나감에 주저함이 없을 것임을 밝혀둔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다. 필자는 인생 마라톤에서 반환점 이상을 전북 CBS에서 달려왔고 앞으로도 몇 년은 더 달릴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누렸던 기사를 쓸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른 사회적 반향, 수상의 영광 등은 CBS라는 철저하게 ‘필자 맞춤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민주 언론의 상징으로 CBS를 우뚝 세워주셨던 선배님들의 위대한 유산이 ‘노컷뉴스’를 통해 르네상스로 찬란하게 피어났고 이제 MZ 세대들이 그 바통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다. (사실 필자도 MZ 세대이다. 초등학교 시절, 주말 5시쯤이면 어김없이 TV가 있는 집에 몰려가 ‘마징가 제트’를 본방 사수했으니...) 


이순신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감히 이순신 장군의 뼈때리는 말을 필자 나름의 각오로 되새기며 너절한 글을 마친다. ‘若無全北 是無CBS...’ 내 인생의 동반자~ CBS 파이팅 ! 

참고로 유튜브 동영상은 지난 2008년 필자가 경찰 출입기자로 일하던 시절, 당시 대학 4학년생이던 지금의 전남 소민정 보도제작국장이 대학 리포트용으로 만들었던 자료. 이 당시에는 조금 더 풋풋했던 기억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