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디캠프
선교사가족
CBS 방문 동행기

박수정 기획조정실 미디어전략부

“planned happenstance“ 계획된 우연. 미국의 심리학자 존 크롬볼츠가 인간 삶에 계획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데요. CBS의 역사도 하나님의 ‘계획된 우연’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일이 지난 5일에 있었습니다. 노컷뉴스 보도로 접하신 분도 있을텐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ispNvsmZxxM


CBS의 창립자인 오토디캠프 선교사님의 후손들이 한국을 떠나고 50년 만에 한국, 그리고 CBS에 방문하셨는데요. 70년 전 척박한 한국 땅에서 방송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옆에서 지켜본 생생한 경험담, 그리고 이렇게 다시 CBS와 연결됨.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니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통역으로 함께하면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저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을 나눠봅니다.

1. 누가 오셨나?


도로시길버트(손녀), 로버트디캠프(손자), 데이비드디캠프(손자), 짐디캠프(차남), 김진오사장, 에드워드디캠프(장남), 노리코낸시(며느리)

오토 디캠프 선교사님의 큰아들(에드워드 디캠프) 내외, 작은아들(짐 디캠프), 손자 두 분(데이비드 디캠프, 로버트 디캠프) 그리고  손녀 한 분(도로시 길버트)까지 총 여섯명이 방문했습니다.

2. 48년 만의 CBS 방문 비하인드


사실 이 가족들은 창립자의 직계가족임에도 불구하고 CBS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습니다. 창사 70주년을 맞아 우리 회사에서도 수소문을 하긴 했지만 실패했었다고 하네요. 오토 디캠프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미련없이 모든 것을 한국교회에 맡기고 갔기 때문입니다.이기도 하고 미국의 비 그래서 가족들도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로부터 한국과 CBS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족 중 오토디캠프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직접 체류했던 분은 두 아들인 에드워드짐  디캠프,짐 데이비드 디캠프 두 분인데요. (현재 둘 다 70대) 너무 늦기 전에 온 가족이 한번쯤은 어릴 때 살던 종로5가에 가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24년 여름이 되어서야 드디어 모든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서 방문을 하시게 되었다고요.

한국이 이렇게 달라진 줄은 몰랐다고 하십니다. 당시 CBS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던,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기억이 있는 종로5가를 찾아갔는데 옛날 집을 찾지 못해 근처를 30여분 간 배회하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우연히” 근처에 있던 양길영 목사님 내외를 마주칩니다. (후에 양목사님 말씀으로는, ‘웬 서양인 관광객들이 땀을 흘리면서 길을 헤매고 있길래 말을 걸었다’고 하셨고요.) 양목사님 내외가 어쩐 일로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헤매고 있냐고 물어보자 ‘우리 아버지가 여기서 CBS를 시작하신 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양 목사님은 놀라서 바로 우리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이렇게 오토디캠프 선교사 가족들과 CBS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됐습니다.

3. 인터뷰 내용


<선교관련 에피소드>

- 아버지(오토디캠프 선교사)가 한국에서 방송선교를 시작한 계기 :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신의주에서 거주하며 선교를 했던 경험으로 자연스레 북한선교에 대한 사명이 있었고 전쟁 이후에 분단되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유일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인 방송을 떠올리게 됐다고.


- 방송장비를 한국에 공수해 오면서 겪은 고초 : 미국에서 공수한 방송장비가 태평양을 건너 왔지만 전쟁 때문에 들어올 수 없었고 일본 고베 창고에 3년 간 사비로 보관 해두셨다.


- 서울의 서쪽에 첫 송신소가 세워질 때 


- 독재정권 때 CBS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보면서 오토디캠프 선교사님이 느끼는 자부심을 두 아들들을에게 표현했음.

- 현재 이렇게 영향력이 큰 방송사가 된 모습이 굉장히 감명깊음.

<아버지에 대한 기억>

-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서대문형무소 독방에 갇혔을 때, 당시 신혼이던 아내와 매일 보신각종이 정오에 울리면 서로를 위해 기도했음. 훗날 이 수감 경험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일본인에 대한 미움은 용서했다고 밝힘.


- 새해와 크리스마스 쿠키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사람에 대한 인정이 많았고, 방송사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아꼈다고 함. 일년에 두번 밤샘 방송을 하는 새해와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직접 쿠키를 구워서 방송사 직원들에게 두 아들들과 함께 배달했다고 함.

- 대천해수욕장의 테니스코트 : 사역으로 바쁜 와중에도 매 여름마다 아들들을 데리고 대천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를 가르치기 위해 대천해수욕장에 테니스코트를 만들었다고 함. 이번 방문에 가봤더니 아직 남아있다고 함. 아들들에게는 이 곳에서의 기억이 한국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


- 장난기 많은 아버지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아버지로서는 굉장히 재밌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는데, 지프차(한국이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이 차를 탔다고 한다)를 타고 파주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아들들에게 운전연습을 해보라고 시켜줬다고 함.
 

- I’ve done what I could :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갈 때, 김포공항에 수많은 배웅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두 아들들이 ‘기분이 어떻냐’ 물으니 ‘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I’ve done what I could)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음.

- 한경직 목사님과 각별히 가까웠다고 함. 


-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목회를 하셨는데 매주 한국에서의 사진을 성도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컸다고 함.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상처 받은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유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하시면서, 당시 전쟁고아들과 과부들이 모여 부르는 찬송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한국어로 아직까지 따라 부르시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매일 출근해서 몸 담고 있는 이 회사의 시작에는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또 우리의 역사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12월에 창사 70주년을 맞이해 가족분들을 다시한번 한국에 초청할 예정인데요. 그때 다시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오토디캠프 선교사가족
CBS 방문 동행기

박수정 기획조정실 미디어전략부

“planned happenstance“ 계획된 우연. 미국의 심리학자 존 크롬볼츠가 인간 삶에 계획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들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데요. CBS의 역사도 하나님의 ‘계획된 우연’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일이 지난 5일에 있었습니다. 노컷뉴스 보도로 접하신 분도 있을텐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ispNvsmZxxM


CBS의 창립자인 오토디캠프 선교사님의 후손들이 한국을 떠나고 50년 만에 한국, 그리고 CBS에 방문하셨는데요. 70년 전 척박한 한국 땅에서 방송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부터 한국 근현대사를 옆에서 지켜본 생생한 경험담, 그리고 이렇게 다시 CBS와 연결됨.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니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통역으로 함께하면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저만 알고 있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을 나눠봅니다.

1. 누가 오셨나?


도로시길버트(손녀), 로버트디캠프(손자), 데이비드디캠프(손자), 짐디캠프(차남), 김진오사장, 에드워드디캠프(장남), 노리코낸시(며느리)

오토 디캠프 선교사님의 큰아들(에드워드 디캠프) 내외, 작은아들(짐 디캠프), 손자 두 분(데이비드 디캠프, 로버트 디캠프) 그리고  손녀 한 분(도로시 길버트)까지 총 여섯명이 방문했습니다.

2. 48년 만의 CBS 방문 비하인드


사실 이 가족들은 창립자의 직계가족임에도 불구하고 CBS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습니다. 창사 70주년을 맞아 우리 회사에서도 수소문을 하긴 했지만 실패했었다고 하네요. 오토 디캠프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미련없이 모든 것을 한국교회에 맡기고 갔기 때문입니다.이기도 하고 미국의 비 그래서 가족들도 아버지(혹은 할아버지)로부터 한국과 CBS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족 중 오토디캠프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직접 체류했던 분은 두 아들인 에드워드짐  디캠프,짐 데이비드 디캠프 두 분인데요. (현재 둘 다 70대) 너무 늦기 전에 온 가족이 한번쯤은 어릴 때 살던 종로5가에 가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24년 여름이 되어서야 드디어 모든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서 방문을 하시게 되었다고요.

한국이 이렇게 달라진 줄은 몰랐다고 하십니다. 당시 CBS의 사역을 처음 시작하던,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살던 기억이 있는 종로5가를 찾아갔는데 옛날 집을 찾지 못해 근처를 30여분 간 배회하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우연히” 근처에 있던 양길영 목사님 내외를 마주칩니다. (후에 양목사님 말씀으로는, ‘웬 서양인 관광객들이 땀을 흘리면서 길을 헤매고 있길래 말을 걸었다’고 하셨고요.) 양목사님 내외가 어쩐 일로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헤매고 있냐고 물어보자 ‘우리 아버지가 여기서 CBS를 시작하신 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양 목사님은 놀라서 바로 우리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이렇게 오토디캠프 선교사 가족들과 CBS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됐습니다.

3. 인터뷰 내용


<선교관련 에피소드>


- 아버지(오토디캠프 선교사)가 한국에서 방송선교를 시작한 계기 :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신의주에서 거주하며 선교를 했던 경험으로 자연스레 북한선교에 대한 사명이 있었고 전쟁 이후에 분단되어 북한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유일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인 방송을 떠올리게 됐다고.


- 방송장비를 한국에 공수해 오면서 겪은 고초 : 미국에서 공수한 방송장비가 태평양을 건너 왔지만 전쟁 때문에 들어올 수 없었고 일본 고베 창고에 3년 간 사비로 보관 해두셨다.


- 서울의 서쪽에 첫 송신소가 세워질 때 


- 독재정권 때 CBS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보면서 오토디캠프 선교사님이 느끼는 자부심을 두 아들들을에게 표현했음.

- 현재 이렇게 영향력이 큰 방송사가 된 모습이 굉장히 감명깊음.

<아버지에 대한 기억>


-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서대문형무소 독방에 갇혔을 때, 당시 신혼이던 아내와 매일 보신각종이 정오에 울리면 서로를 위해 기도했음. 훗날 이 수감 경험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일본인에 대한 미움은 용서했다고 밝힘.


- 새해와 크리스마스 쿠키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사람에 대한 인정이 많았고, 방송사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아꼈다고 함. 일년에 두번 밤샘 방송을 하는 새해와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직접 쿠키를 구워서 방송사 직원들에게 두 아들들과 함께 배달했다고 함.

- 대천해수욕장의 테니스코트 : 사역으로 바쁜 와중에도 매 여름마다 아들들을 데리고 대천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를 가르치기 위해 대천해수욕장에 테니스코트를 만들었다고 함. 이번 방문에 가봤더니 아직 남아있다고 함. 아들들에게는 이 곳에서의 기억이 한국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


- 장난기 많은 아버지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아버지로서는 굉장히 재밌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는데, 지프차(한국이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이 차를 탔다고 한다)를 타고 파주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아들들에게 운전연습을 해보라고 시켜줬다고 함.
 

I’ve done what I could :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갈 때, 김포공항에 수많은 배웅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두 아들들이 ‘기분이 어떻냐’ 물으니 ‘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I’ve done what I could)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음.

- 한경직 목사님과 각별히 가까웠다고 함. 


-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목회를 하셨는데 매주 한국에서의 사진을 성도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컸다고 함.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상처 받은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유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하시면서, 당시 전쟁고아들과 과부들이 모여 부르는 찬송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한국어로 아직까지 따라 부르시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매일 출근해서 몸 담고 있는 이 회사의 시작에는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또 우리의 역사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12월에 창사 70주년을 맞이해 가족분들을 다시한번 한국에 초청할 예정인데요. 그때 다시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