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서대문형무소 독방에 갇혔을 때, 당시 신혼이던 아내와 매일 보신각종이 정오에 울리면 서로를 위해 기도했음. 훗날 이 수감 경험을 통해서 한국인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일본인에 대한 미움은 용서했다고 밝힘.
- 새해와 크리스마스 쿠키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사람에 대한 인정이 많았고, 방송사 직원 한사람 한사람을 아꼈다고 함. 일년에 두번 밤샘 방송을 하는 새해와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직접 쿠키를 구워서 방송사 직원들에게 두 아들들과 함께 배달했다고 함.
- 대천해수욕장의 테니스코트 : 사역으로 바쁜 와중에도 매 여름마다 아들들을 데리고 대천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테니스를 가르치기 위해 대천해수욕장에 테니스코트를 만들었다고 함. 이번 방문에 가봤더니 아직 남아있다고 함. 아들들에게는 이 곳에서의 기억이 한국에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
- 장난기 많은 아버지 : 오토디캠프 선교사는 아버지로서는 굉장히 재밌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는데, 지프차(한국이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이 차를 탔다고 한다)를 타고 파주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아들들에게 운전연습을 해보라고 시켜줬다고 함.
- I’ve done what I could : 모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갈 때, 김포공항에 수많은 배웅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두 아들들이 ‘기분이 어떻냐’ 물으니 ‘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I’ve done what I could)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음.
- 한경직 목사님과 각별히 가까웠다고 함.
- 한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목회를 하셨는데 매주 한국에서의 사진을 성도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컸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