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에 담긴 CBS

그 빛나는 역사의 한페이지 속으로

광주CBS

전 국민이 환호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바로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 안에 CBS의 역사 한페이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유신 말기 노동운동과 반독재투쟁이 그려지면서 아래와 같이 CBS가 언급된 것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 당시 광주시민들의 가슴에 CBS는 실제로 특별했습니다. 5.18이 발발하기 이틀 전인 1980년 5월 16일, 광주CBS를 비롯한 광주지역 방송사 3사 기자들은 당시 사옥으로 쓰던 광주카톨릭센터에서 ‘언론 자유화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의 무지막지한 진압이 이뤄지자, KBS와 MBC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CBS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계엄군의 진압 도중에 금남로 전남도청 앞 가톨릭회관에 연주소를 두고 있는 광주CBS의 일부 방송 기기가 파손되는 일이 벌어지자, 광주CBS가  방송 시설 파손을 핑계로 계엄군이 지시하는 거짓뉴스를 방송하지 않고 버틴 것입니다.

광주시민들은 계엄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CBS에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시민군들이 계엄사의 지시대로 뉴스를 방송한 광주KBS와 광주MBC에는 불을 질렀지만, 광주CBS만은 온전했고, 특히 CBS의 취재 차량만은 시민군이 지키는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던 것입니다.

CBS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6월 항쟁’ 기간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생생한 시위현장을 공중전화로 중계한 CBS, ‘4·13 호헌 철폐’와 ‘직선제 개헌’ 투쟁 현장 모습도 신속히 전달한 CBS, 이한열 열사 장례식 현장에서 장장 4시간의 마라톤 중계를 한 CBS를 향해 시민들은 응원과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들 집회 시위 현장을 중계할 때마다, 시위 현장에 CBS 중계차(포니웨건)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연호하면서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6.29 선언 직후 김대중 민추협 의장과 진행한 CBS의 30분 인터뷰 방송은 광주전남 시민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5.18을 이야기하는 방송은 광주CBS의 전유물이자 특종상의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광주 금남로 4~5가에서 CBS 라디오 시위 생중계를 청취 중인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한강의 소설에 CBS가 담긴 대목은 바로 이러한 상황과 장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증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6월 항쟁 직후 광주CBS는 8월 11일, 뉴스 부활을 요구하며 전 직원 철야단식 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서울, 부산, 이리 등 전국의 CBS 직원들이 동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부터 뉴스를 부활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80년 5.18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1987년 10월 19일 뉴스 부활을 맞기까지 7년여의 암흑기에 광주CBS가 보여준 시대정신과 실천이야말로 오늘의 CBS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CBS를 있게 한 이와 같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에 담기는 일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CBS를 있게 한 더 많은 페이지들, 빛나는 CBS의 더 많은 장면들이 우리 사회 전체에 공유되도록 더 깊은 취재와 기록을 통해 구체화하고 보존하며 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통폐합 조치로 KBS로 쫓겨가고 해직당한 선배들, 이후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 과정을 세상에 알렸던 선배들 대부분이 소천하셨고, 남은 몇몇분들도 이제는 황혼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에 담긴 CBS

그 빛나는 역사의 한페이지 속으로

광주CBS 

전 국민이 환호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바로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 안에 CBS의 역사 한페이지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유신 말기 노동운동과 반독재투쟁이 그려지면서 아래와 같이 CBS가 언급된 것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 당시 광주시민들의 가슴에 CBS는 실제로 특별했습니다. 5.18이 발발하기 이틀 전인 1980년 5월 16일, 광주CBS를 비롯한 광주지역 방송사 3사 기자들은 당시 사옥으로 쓰던 광주카톨릭센터에서 ‘언론 자유화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의 무지막지한 진압이 이뤄지자, KBS와 MBC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CBS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계엄군의 진압 도중에 금남로 전남도청 앞 가톨릭회관에 연주소를 두고 있는 광주CBS의 일부 방송 기기가 파손되는 일이 벌어지자, 광주CBS가  방송 시설 파손을 핑계로 계엄군이 지시하는 거짓뉴스를 방송하지 않고 버틴 것입니다.

광주시민들은 계엄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CBS에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시민군들이 계엄사의 지시대로 뉴스를 방송한 광주KBS와 광주MBC에는 불을 질렀지만, 광주CBS만은 온전했고, 특히 CBS의 취재 차량만은 시민군이 지키는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던 것입니다.

CBS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6월 항쟁’ 기간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생생한 시위현장을 공중전화로 중계한 CBS, ‘4·13 호헌 철폐’와 ‘직선제 개헌’ 투쟁 현장 모습도 신속히 전달한 CBS, 이한열 열사 장례식 현장에서 장장 4시간의 마라톤 중계를 한 CBS를 향해 시민들은 응원과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들 집회 시위 현장을 중계할 때마다, 시위 현장에 CBS 중계차(포니웨건)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연호하면서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6.29 선언 직후 김대중 민추협 의장과 진행한 CBS의 30분 인터뷰 방송은 광주전남 시민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5.18을 이야기하는 방송은 광주CBS의 전유물이자 특종상의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광주 금남로 4~5가에서 CBS 라디오 시위 생중계를 청취 중인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한강의 소설에 CBS가 담긴 대목은 바로 이러한 상황과 장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증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6월 항쟁 직후 광주CBS는 8월 11일, 뉴스 부활을 요구하며 전 직원 철야단식 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에 서울, 부산, 이리 등 전국의 CBS 직원들이 동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부터 뉴스를 부활시키는 데에 성공합니다. 80년 5.18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1987년 10월 19일 뉴스 부활을 맞기까지 7년여의 암흑기에 광주CBS가 보여준 시대정신과 실천이야말로 오늘의 CBS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CBS를 있게 한 이와 같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에 담기는 일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CBS를 있게 한 더 많은 페이지들, 빛나는 CBS의 더 많은 장면들이 우리 사회 전체에 공유되도록 더 깊은 취재와 기록을 통해 구체화하고 보존하며 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통폐합 조치로 KBS로 쫓겨가고 해직당한 선배들, 이후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 과정을 세상에 알렸던 선배들 대부분이 소천하셨고, 남은 몇몇분들도 이제는 황혼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