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전략',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은 이제는 우리 귀에 익숙할 정도로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개념도 대강 알겠고, 여기저기 책과 정보도 넘쳐나지만, 우리 회사의 미디어 미래상과 딱 맞는 정답은 잘 모르겠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회사는 레거시 매체와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함께 구상해 보자는 취지로 ‘미디어 4.0시대 기획안’ 공모를 진행했었고, 공모작 중에 참신하고 실제 구현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내부 발표 일정도 진행했지요. 내부 발표작은 지난 씨너지(C.nergy)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직원들의 제안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나갈 예정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에 대한 주니어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씨너지(C.nergy)에서 차례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 제작국 디지털콘텐츠 제작부 조석영 PD의 기획안에 이어 디지털콘텐츠국 콘텐츠제작부 신혜림 팀장의 기획안을 공유합니다.
‘브랜드’를 보고 뉴스 콘텐츠를 선택하지 않았던 시대가 분명 있기도 했습니다. 소수 언론사가 전파와 지면을 과점했던 과거에는 브랜딩을 공고히 하고 매력을 어필할 필요가 적었습니다. 뉴스 공급 주도권이 포털로 넘어간 뒤에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털 진입’ 장벽이 두터웠고 어차피 포털 편집자 혹은 특정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해 뉴스가 보였기 때문에, 한 언론사 안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은 유기성을 갖기보단 개별적인 각개전투 형태를 띠었습니다. 지금껏 대다수 한국 언론사에 ‘브랜딩 DNA’가 없다시피 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포털의 시대도 지나가고 채널 무한증식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관점도 역량도 제각기 다른 여러 사원이 달려들어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회사 채널 바로 옆에는, 전문성 넘치는 개인의 인사이트, 혹은 캐릭터 두드러지는 크리에이터의 시시콜콜한 의견이 동등하게 위치해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요? 누구나 쉽게 텍스트/카메라를 다룰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고, 채널을 소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개인 채널과 회사에 소속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중구난방의 결과물을 보이는 채널이 독자의 화면에 구별 없이 보일 때, 머릿속에 더 잘 남는 건 고유한 캐릭터가 생산해 내는 전자의 콘텐츠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가장 정교한 브랜드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설파하고, 특정 물건을 사용하고, 의견을 말하고, 설령 그 의견이 나중에 어떤 이유로 인해 달라져도, 그건 그냥 그럴만합니다. 개개인에게는 다양한 성향이 존재하며 그 성향은 또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회사에서 만드는 채널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흐릿해지거나 알 수 없이 왔다 갔다 하기 십상입니다. 매우 부자연스럽고 흥미도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은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과 세계관 확장, 즉 브랜딩. 이것이 전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뉴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 구분할 것 없는 웰메이드 콘텐츠의 본질이지만, SNS라는 플랫폼을 통해 1인 미디어와 형식적으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잠재력 있는 캐릭터를 발 빠르게 발굴해 내거나, 혹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더라도 균일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채널 정체성을 공고히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성공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공통 시작점입니다.
지금도 굳건히 대표적인 디지털 플랫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튜브는 이러한 ‘캐릭터 구축과 세계관 확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트위치, 아프리카와 같이 원맨쇼에 머무르는 타사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달리 구독자와 비구독자 모두에게 정교한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됩니다. 그래서 코어 팬층과 확장성 두 마리를 다 챙길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의 유튜브 채널이 잘되면 확장해서 다채널 전략으로 여러 개의 자아를 분리해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혹은 합이 맞는 다른 채널과 연합해서 사단(크루)을 만들 수도 있고, 결국 회사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약 120만 구독자를 보유한 빠니보틀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자아를 마음껏 노출하는 여행 유튜버입니다. 그는 때때로 마음 맞는 다른 유튜버들과 함께 여행하기도 합니다. 크루를 만들어 콘텐츠도 다채롭게 하고 서로의 노출도 늘려주는 윈윈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그중 한 유튜버(곽튜브)의 경험을 녹여 중소기업의 현실을 다룬 웹드라마 <좋좋소>를 만들어냅니다. <좋좋소>는 소위‘대박'이 나서 대형 OTT 플랫폼인 왓챠에 진출했습니다. 그들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녹아 있는 세계관 확장의 결과물입니다.
개그우먼 송은이 역시 더 이상 방송사의 섭외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가 동료 김숙과 함께 시작한 팟캐스트는 어느덧 유튜브 채널이 되고, 프로그램이 되고, 어엿한 제작사 겸 기획사 ‘콘텐츠랩 비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직접 등판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지만 연출자 겸 제작자 역할도 수행합니다. <영수증> 같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TV에 역으로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끼는 많지만 ‘갑'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개그우먼 후배들의 캐릭터를 극대화해서 세계관을 확장합니다.
‘나라를 구했다'라는 금융 채널 삼프로TV는 주식 열풍과 맞물려 콘텐츠 고도화와 채널 확장을 시도해 이제는 상장까지 시도하고 있다지요. 3인의 캐릭터를 돌려가며 쉬지 않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의성 있는 이슈를 분량 제한 없이 다룹니다. 최근에는 주요 대선후보 인터뷰를 통해 ‘공중파보다 낫다'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리 유튜버 승우 아빠는 강남에서 레스토랑과 유튜브가 결합된 음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크리에이터 개인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 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개인'이 아니라 애초부터‘회사'에서 출발하는 채널은 어때야 할까요.
K, M, S 같이 기반이 탄탄한 회사라면 이미 축적해놓은 자산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인력과 실무 노하우, 이미 유명한 브랜드 등.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한방은 바로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영상 아카이브죠. 직접 찍어오지 않아도 시의적절한 푸티지(footage) 활용이 무한히 가능합니다. 아쉽게도 CBS에는 없는 자산입니다. MBC의 <14F>, SBS의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 KBS의 <크랩> 등 대표적 뉴미디어 채널이 이러한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혹은 TV에 버금가는 제작비나 인력을 활용해 이미 탁월한 캐릭터를 섭외해서 세계관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JTBC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간판 채널 <워크맨>, <왓썹맨>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외주 제작사들 역시 캐릭터 개인에게 직접 콘택트 하여 독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합니다. 요즘 반응이 좋은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나 <조승연의 탐구생활>이 그런 방식입니다. 조선일보 역시 비슷합니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패션디자이너 장명숙의 라이프스타일을 <밀라논나>라는 채널로 극대화했고, 이러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근래에는 디지털 콘텐츠 스튜디오 자회사인 ‘스튜디오 광화문'을 설립했습니다.
그럼 더더욱 가진 것 없는 언론사 채널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CBS에서 근무해온 지난 7년 동안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자산은 역시나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1번. 인기 캐릭터를 영입할 능력이 없다면, 사원 개인의 캐릭터를 극대화해서 적극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MBC <소비더머니>와 SBS 스브스뉴스에서 출발한 <문명특급>이 1번의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속성입니다. 그가 애초에 비정규 인력이었다면? 퇴사를 해버린다면? 이러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한 캐릭터를 믿고 온전한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는 반드시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편 한 사람의 결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회사가 캐릭터를 뒷받침하는 인력을 그저 소모품으로 여겨버리는 상황은 1번의 선택지를 취한 많은 브랜드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2번. ‘원팀’으로서 여러 사원의 캐릭터를 융합한 정교한 브랜드 컬러와 세계관을 구축해야 합니다. 씨리얼의 경우 TV국 이외에는 영상 제작 기반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각자가 기획과 구성, 촬영, 편집, 종편 능력까지 겸비한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시스템화했습니다. 단순 반복 업무는 최대한 ‘템플릿’화 하고,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업무 분장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대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더라도 ‘씨리얼'이라는 브랜드는 일관된 자아처럼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또 비정규 인력의 처우를 점진적으로나마 개선하고,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심했습니다. 이러한 2번의 전략은 ‘개인 크리에이터’가 절대 해낼 수 없는, 회사 고유의 영역입니다. 날이 갈수록 자극을 추구하는 냉혹한 알고리즘 환경 속에서 버텨온 씨리얼 브랜드의 노하우는 교육과 협업을 통해 CBS 사내 곳곳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막판까지 남는 과제는 결국 이것입니다. 이렇게 회사가 점점 사원 개개인에 의존하게 된다면, 필요할 경우 얼굴까지 드러내가며 일해야 한다면, 그들은 왜 하필 이 팀에서, 이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누구나 쉽게 텍스트/카메라를 다룰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고, 채널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시대에서, 왜 하필 이곳에서 본인의 고유함을 펼쳐야 하는가. 콘텐츠로 먹고사는 회사라면 그 이유를 사원에게 끊임없이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회사 소속이 아니면 하기 힘든, ‘멋진 여러 동료들이 힘을 합쳐 만들기 때문에, 또 언론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브랜드’를 키우고 투자하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OTT 전략',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은 이제는 우리 귀에 익숙할 정도로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개념도 대강 알겠고, 여기저기 책과 정보도 넘쳐나지만, 우리 회사의 미디어 미래상과 딱 맞는 정답은 잘 모르겠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회사는 레거시 매체와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함께 구상해 보자는 취지로 ‘미디어 4.0시대 기획안’ 공모를 진행했었고, 공모작 중에 참신하고 실제 구현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내부 발표 일정도 진행했지요. 내부 발표작은 지난 씨너지(C.nergy)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직원들의 제안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나갈 예정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에 대한 주니어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씨너지(C.nergy)에서 차례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 제작국 디지털콘텐츠 제작부 조석영 PD의 기획안에 이어 디지털콘텐츠국 콘텐츠제작부 신혜림 팀장의 기획안을 공유합니다.
‘브랜드’를 보고 뉴스 콘텐츠를 선택하지 않았던 시대가 분명 있기도 했습니다. 소수 언론사가 전파와 지면을 과점했던 과거에는 브랜딩을 공고히 하고 매력을 어필할 필요가 적었습니다. 뉴스 공급 주도권이 포털로 넘어간 뒤에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털 진입’ 장벽이 두터웠고 어차피 포털 편집자 혹은 특정 알고리즘의 선택에 의해 뉴스가 보였기 때문에, 한 언론사 안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은 유기성을 갖기보단 개별적인 각개전투 형태를 띠었습니다. 지금껏 대다수 한국 언론사에 ‘브랜딩 DNA’가 없다시피 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포털의 시대도 지나가고 채널 무한증식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관점도 역량도 제각기 다른 여러 사원이 달려들어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회사 채널 바로 옆에는, 전문성 넘치는 개인의 인사이트, 혹은 캐릭터 두드러지는 크리에이터의 시시콜콜한 의견이 동등하게 위치해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요? 누구나 쉽게 텍스트/카메라를 다룰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고, 채널을 소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개인 채널과 회사에 소속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중구난방의 결과물을 보이는 채널이 독자의 화면에 구별 없이 보일 때, 머릿속에 더 잘 남는 건 고유한 캐릭터가 생산해 내는 전자의 콘텐츠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가장 정교한 브랜드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설파하고, 특정 물건을 사용하고, 의견을 말하고, 설령 그 의견이 나중에 어떤 이유로 인해 달라져도, 그건 그냥 그럴만합니다. 개개인에게는 다양한 성향이 존재하며 그 성향은 또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회사에서 만드는 채널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흐릿해지거나 알 수 없이 왔다 갔다 하기 십상입니다. 매우 부자연스럽고 흥미도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은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과 세계관 확장, 즉 브랜딩. 이것이 전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뉴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 구분할 것 없는 웰메이드 콘텐츠의 본질이지만, SNS라는 플랫폼을 통해 1인 미디어와 형식적으로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잠재력 있는 캐릭터를 발 빠르게 발굴해 내거나, 혹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타더라도 균일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채널 정체성을 공고히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성공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공통 시작점입니다.
지금도 굳건히 대표적인 디지털 플랫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튜브는 이러한 ‘캐릭터 구축과 세계관 확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트위치, 아프리카와 같이 원맨쇼에 머무르는 타사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달리 구독자와 비구독자 모두에게 정교한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됩니다. 그래서 코어 팬층과 확장성 두 마리를 다 챙길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의 유튜브 채널이 잘되면 확장해서 다채널 전략으로 여러 개의 자아를 분리해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혹은 합이 맞는 다른 채널과 연합해서 사단(크루)을 만들 수도 있고, 결국 회사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약 120만 구독자를 보유한 빠니보틀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자아를 마음껏 노출하는 여행 유튜버입니다. 그는 때때로 마음 맞는 다른 유튜버들과 함께 여행하기도 합니다. 크루를 만들어 콘텐츠도 다채롭게 하고 서로의 노출도 늘려주는 윈윈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그중 한 유튜버(곽튜브)의 경험을 녹여 중소기업의 현실을 다룬 웹드라마 <좋좋소>를 만들어냅니다. <좋좋소>는 소위‘대박'이 나서 대형 OTT 플랫폼인 왓챠에 진출했습니다. 그들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녹아 있는 세계관 확장의 결과물입니다.
개그우먼 송은이 역시 더 이상 방송사의 섭외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가 동료 김숙과 함께 시작한 팟캐스트는 어느덧 유튜브 채널이 되고, 프로그램이 되고, 어엿한 제작사 겸 기획사 ‘콘텐츠랩 비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본인이 직접 등판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지만 연출자 겸 제작자 역할도 수행합니다. <영수증> 같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TV에 역으로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끼는 많지만 ‘갑'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개그우먼 후배들의 캐릭터를 극대화해서 세계관을 확장합니다.
‘나라를 구했다'라는 금융 채널 삼프로TV는 주식 열풍과 맞물려 콘텐츠 고도화와 채널 확장을 시도해 이제는 상장까지 시도하고 있다지요. 3인의 캐릭터를 돌려가며 쉬지 않는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시의성 있는 이슈를 분량 제한 없이 다룹니다. 최근에는 주요 대선후보 인터뷰를 통해 ‘공중파보다 낫다'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리 유튜버 승우 아빠는 강남에서 레스토랑과 유튜브가 결합된 음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크리에이터 개인이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 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개인'이 아니라 애초부터‘회사'에서 출발하는 채널은 어때야 할까요.
K, M, S 같이 기반이 탄탄한 회사라면 이미 축적해놓은 자산이 있습니다. 압도적인 인력과 실무 노하우, 이미 유명한 브랜드 등.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한방은 바로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영상 아카이브죠. 직접 찍어오지 않아도 시의적절한 푸티지(footage) 활용이 무한히 가능합니다. 아쉽게도 CBS에는 없는 자산입니다. MBC의 <14F>, SBS의 <스브스뉴스>와 <비디오머그>, KBS의 <크랩> 등 대표적 뉴미디어 채널이 이러한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혹은 TV에 버금가는 제작비나 인력을 활용해 이미 탁월한 캐릭터를 섭외해서 세계관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JTBC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간판 채널 <워크맨>, <왓썹맨>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외주 제작사들 역시 캐릭터 개인에게 직접 콘택트 하여 독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합니다. 요즘 반응이 좋은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나 <조승연의 탐구생활>이 그런 방식입니다. 조선일보 역시 비슷합니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패션디자이너 장명숙의 라이프스타일을 <밀라논나>라는 채널로 극대화했고, 이러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근래에는 디지털 콘텐츠 스튜디오 자회사인 ‘스튜디오 광화문'을 설립했습니다.
그럼 더더욱 가진 것 없는 언론사 채널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CBS에서 근무해온 지난 7년 동안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자산은 역시나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1번. 인기 캐릭터를 영입할 능력이 없다면, 사원 개인의 캐릭터를 극대화해서 적극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MBC <소비더머니>와 SBS 스브스뉴스에서 출발한 <문명특급>이 1번의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속성입니다. 그가 애초에 비정규 인력이었다면? 퇴사를 해버린다면? 이러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한 캐릭터를 믿고 온전한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는 반드시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편 한 사람의 결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가서도 안 됩니다. 회사가 캐릭터를 뒷받침하는 인력을 그저 소모품으로 여겨버리는 상황은 1번의 선택지를 취한 많은 브랜드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2번. ‘원팀’으로서 여러 사원의 캐릭터를 융합한 정교한 브랜드 컬러와 세계관을 구축해야 합니다. 씨리얼의 경우 TV국 이외에는 영상 제작 기반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각자가 기획과 구성, 촬영, 편집, 종편 능력까지 겸비한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시스템화했습니다. 단순 반복 업무는 최대한 ‘템플릿’화 하고,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업무 분장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대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더라도 ‘씨리얼'이라는 브랜드는 일관된 자아처럼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습니다. 또 비정규 인력의 처우를 점진적으로나마 개선하고,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심했습니다. 이러한 2번의 전략은 ‘개인 크리에이터’가 절대 해낼 수 없는, 회사 고유의 영역입니다. 날이 갈수록 자극을 추구하는 냉혹한 알고리즘 환경 속에서 버텨온 씨리얼 브랜드의 노하우는 교육과 협업을 통해 CBS 사내 곳곳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막판까지 남는 과제는 결국 이것입니다. 이렇게 회사가 점점 사원 개개인에 의존하게 된다면, 필요할 경우 얼굴까지 드러내가며 일해야 한다면, 그들은 왜 하필 이 팀에서, 이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누구나 쉽게 텍스트/카메라를 다룰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고, 채널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시대에서, 왜 하필 이곳에서 본인의 고유함을 펼쳐야 하는가. 콘텐츠로 먹고사는 회사라면 그 이유를 사원에게 끊임없이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회사 소속이 아니면 하기 힘든, ‘멋진 여러 동료들이 힘을 합쳐 만들기 때문에, 또 언론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브랜드’를 키우고 투자하는 데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